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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백씨의 기록/독서 노트

막다른 골목의 추억... 을 끄집어 내다(요시모토 바나나)

이여서 그랬을까...

빼곡히 들어찬 수 많은 책들이 놓여있던 곳에서 나의 눈길을 잡아 끈 책 하나.

기나긴 겨울이, 유난히도 길었던... 그 스산한 추위가 멀어질 듯 멀어지지 않고 자꾸만 질척거리는 때였다.



구멍을 파고 밑으로 밑으로,

한없이 나 자신을 밀어넣고 또 밀어넣어도 내 몸이 다 가려지지 않는 느낌.

그래서 차라리 그럴 바엔 힘을 내 몸을 일으켜보자!! 하고 길을 나섰다.

자연스럽게 향하게 된 곳이 광화문에 있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서점.



서점 안의 수 많은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엄치듯 헤집고 다니다가  한 곳에 멈춰섰다.

이쁜 ~~ 하늘색 표지의 책 하나에 호기심이 일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막다른 골목의 추억...



그냥 밝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뻤다.

난 지금 밝고, 힘차고, 살아있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 이 책이 나에겐 " 딱 맞다!" 싶었고, 그게 다다.








책은 다섯 가지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단편마다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생의 한가운데서 맞닥드리게 되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네가 의도한 대로 그려지지 않는 삶의 모습들이 작품에 스며들어 있고,

그 모습들을 때론 저항하고 때론 그냥 그대로 수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든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따스한 시선이 그 삶을 가치있게 한다.



대학 동창 사이인 셋 짱과 이와쿠라의 만남과 헤어짐,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진 <유령의 집>


사원 식당에서 독극물(대량의 감기약)이 든 밥을 먹고 죽을 고비를 넘긴 마쓰오카의 이야기. 한바탕 소동이 있긴 했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퇴원해서 일상생활을 하는 듯 했지만, 몸도 마음도 다스려 지지 않는 상황을 그린 <엄마!>


어릴 적 친구(마코토)에 대한  추억의 단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5년 차 소설작가인 나, 미쓰요의 < 따뜻하지 않아>


나이가 위인 소꿉친구에게 겁탈을 당하고,  아버지의 비서였던 여성에게 아버지를 빼앗기고,  단 둘이 의지하며 살던 엄마까지 병으로 잃고 혼자서 살아가는  주인공 도모 짱. 5년 간 나이도 있고, 키는 훌쩍 크지만 , 머리는 많이 벗겨졌고, 손가락에 털이 숭숭 나있는 미사와 씨를 좋아하는 그녀의 이야기< 도모 짱의 행복>


대학 시절부터 사귀고 약혼까지 한 사이인 다카나시와 여주인공 미미의  감정의 흐름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로, 삼촌내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유로운 몸과 영혼의 또다른 주인공 니시야마의 존재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던 <막다른 골목의 추억>




이 중에서 특히 <엄마!> 가 마음에 남는다.

한 차례의 뜻하는 않던 '죽음' 이라는 일을 겪고 난 뒤의 주인공 마쓰오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에 모든 것이 예전의 제자리로 돌아온 듯 했지만, 

정작 그녀만은  뭔가 이전과  같지 않다.  회복이 다 되었다고, 괜찮다고만 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었다. 살해당했을 지도 모른다는 사건은 그녀로 하여금 잊고 지내고, 꽁꽁 묻어두었던 가족에 대한 상처를 끄집어 냈고,  그 독을 마음속으로 부터 다 뿜어낸 후에야 그녀는 생각한다.

" 독을 먹은 바람에 지금까지 내 몸속에 있다가 한꺼번에 떠오른 독이 그 눈물과 함께 빠져나간 것 같았다. "




< 옮긴이 - 김난주>


의 고비도, 예기치 못한 불행과 시련도, 어느날 불쑥 내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생의 커다란 흐름 속에 이미 마련되어 있던 것임을,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르고 마음도 추슬러진 후에야 깨닫곤 합니다. 그러니 당장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황량함과 시련의 깊이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어느 날 돌아보면, 우리가 고비도 넘어서고 불행과 시련에서도 헤어난 어떤 자리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그렇게 끌어올려 주고, 끄집어내 주는 힘이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생명력인지 신의 자비롭고 따스한 손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어떤 힘의 인도와 베풂이 있어우리는  자기 몸과 마음에 난 상처를 제 손으로 깁고 어루만지고 다독일 수 있는 것이지요.


가장 마음에 들어온  옮긴이 김난주의 글 ...